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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뇽의 개발 인생 삶 1부 종료(2011~2019년, 현재 27살)핵인싸 개발자의 길 2019. 6. 27. 23:04
지금 내가 여기까지 개발자의 길을 걷게 되고, 지금 이 만큼 오게 된 나 자신이 마냥 신기하게 느껴진다.
돌이켜보면 하나하나 운이 좋아서 여기까지 오게 된 느낌이 크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 하나의 요소라도 달랐다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고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던 고등학생 시절]
정말 엄청나게 공부를 안 했다... 수능 전 날 게임을 할 정도로 공부보다 노는 것이 좋았던 나였다.
그래서 대학교도, 못난 내 성적 맞는 여러 지방 전문대학 중 아무 데나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이때, 나를 개발자의 길로 첫 발걸음을 내딛게 한, '내 인생 최고로 운 좋은 선택' 을 하게 된다.
"지금 스마트폰이란 게 나오는데... 모바일 과로 가면 전망이 좋지 않을까?"
(그때 마침, 그 과 이름도 '컴퓨터 공학'이 아닌 , '모바일 인터넷학과' 이였다.)
미래 생각이 없는 내가, 그 많은 전공 중 하나인 컴퓨터 공학을 선택한 이유가 고작 이 것이었다. 너무 단순하면서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저런 단순한 생각을 하고 있던 나로선 분명히, 전공 이름에 '모바일'이란 단어가 들어가 있지 않았다면 해당 전공을 선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현재로서야 자기 커리어를 개발 쪽으로 바꾸는 추세에, 당연히 '스마트폰이란 게 뜨고 있으면 그쪽 분야로 가야지!' 하지만, 실제론 저 당시에 스마트폰이란 게 나오고 있어도 어찌 개발이란 직업이 이렇게 뜰 것이라고 생각을 했겠는가...
그렇게 나는 컴퓨터 전공 선택과 동시에 개발자의 길 첫 걸음을 시작한다.
[전문대학교에서 나를 깨우치다.]
대학교 새내기로 입학을 했다. 대학 라이프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1학년이다.
공부를 죽어라 싫어하는 내가 대학 새내기 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했을까?
이상하게 열심히 했다.
뜬금없이 나도 내가 정말 신기했다. 수업시간을 즐거웠던 적이 없었던 내가 처음으로 C언어를 다뤄보며 로직이 돌아가는 것에 재미를 느꼈다.
C언어 코드로 알고리즘을 풀고, 과제를 열심히 제출했다. 재미가 있는데 뭔들 안 하랴..
그렇게 해당 과목은 처음으로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릴 만큼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되고, 한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니 다른 과목도 욕심이 났다.
그렇게 C언어는 '내 인생을 위한 열정'의 스타트가 되었다.
만약 나 혼자였다면 이런 스타트를 끊지 못했을 것이다.
공부를 지지리도 안 하는 사람들끼리 모인 대학교 안에서, 나와 아주 친했던 남다른 친구가 한 명 있었다.
그 친구는 어려운 알고리즘 문제도 금방 풀어버릴 만큼 머리도 똑똑했고, 무엇보다 엄청난 노력 파였다.
그런 친구와 친해지며 나도 옆에서 자연스레 공부를 하게 되고, 괜히 성적으로 뒤처지지 않으려고 그 친구를 나의 목표로 삼았다.
한 번은 술자리에서 물어봤다. 너 정도의 얘가 대체 왜 이 학교에 오게 되었는지...
자기 목표로 둔 대학교들이 다 떨어졌다고 했다. 처음에는 이 학교로 오게 된 게 싫었지만, 지금은 전액 장학금을 받기 쉬워 좋다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렇게 그 친구와 1,2등을 다투며 1년을 보낸 뒤, 군 휴학과 입대를 하면서 서로 소식이 끊기게 되었다.
제대 후 복학한 뒤에도 그 친구는 학교에서 더 이상 볼 수 없었고, 이후 다른 친구를 통해 우수한 성적으로 일본으로 취업했다는 소식이 끝이었다.
[복학 후 내 인생을 설계하다]
길고 긴 군 생활을 1월에 끝내고, 2달 뒤 2학년으로 복학을 했다. 1학년 때의 감이 살아있어 엄청나게 공부의 열정을 불 질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의 목표는 전액 장학금이었다. 그 이상 나의 인생에 대한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 친구가 없어 전액 장학금은 나의 몫이었고, 과에서는 톱이 되었다. 교수님의 이쁨을 받아, 내게 인생을 좌우할 선택지 하나를 마련해 주셨다.
"학점은행제를 병행하여 졸업 후, 대학원 입학"
졸업 후 삶을 생각해보지 못한 내겐 두 눈이 동그래질 수밖에 없었다.
대학원이라 하니 뭔가 좋아 보였다. 바로 알겠다고 하고 싶었지만,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는 나로선 조언을 받을 수 있는 게 부모님 말고는 없었다.
하지만 부모님께선, 대학원을 추천하지 않으셨고 나는 수긍하여(그때 어떤 말로 수긍을 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교수님의 제안을 거절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배경으로 진지하게 나의 졸업 후 진로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 당시에 전문학사와 학사의 대우가 다르다는 주위의 얘기를 많이 들었다. 연봉에서도 차이가 많다고 한다.
일 보다는 공부가 더 좋았던 나는, 취업준비가 아닌 편입 준비를 하게 된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편입 공부와 토익학원을 다녔다.
졸업 후 다른 친구들을 일터로 투입될 때, 나는 '홍익대학교' 편입을 성공하여 공부의 연장선을 잇게 된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실수, 조기취업]
4년제 대학은 전 대학만큼 쉽지가 않다. 나만큼 열정이 가득한 학생들이 많아 좋은 성적 거두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성실함은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았던 것 같다. 방학이 되면 다들 놀고 있을 때, 나는 항상 인턴을 나가 실무를 경험했다. IT스타트업에서 상당한 실력자들에게 github, Ajax, Linux 환경에서의 개발 등 학교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많이 경험했다.
이러한 인턴생활은 나에게 '실무로 빨리 나갈수록 좋다'는 생각을 심어주게 되었고, 나의 개발 실력을 상승시키고자 하는 욕심에 4학년 마지막 학기의 성적을 조기취업과 맞바꾸는 선택을 하였다.
그렇게 마지막 학기의 과목들을 전부 D를 맞으면서, 내가 평생 가지고 갈 전체 학점이 3.45로 내려가버렸다...
하지만 저때까지는 괜찮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중요하건 실무이고 내 실력이니까! 그래서 내가 들어간 첫 회사에서 내 실력을 최대한 상승시키리라 다짐했다.
그 당시 취업준비를 할 때는 하반기 공채 시즌이었고, 대기업 공채와 소셜 기업 여기저기 채용공고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엄청 들떴다. 여기저기 다 지원해보자!라는 의욕만 가득했다.
그러나 현실은 한 기업에 지원을 하려 해도 자소서를 쓰는 게 너무 부담이었다. 그 당시 자소서가 익숙지도 않고 특별한 경험, 특별한 삶을 살지 않은 내게는 자소서란 너무나 힘든 준비였다.
스펙이 남다른 것도 아니었고....각 기업마다 자소서 질문도 각기 다른데, 거기에 맞춰 나를 꾸며서 내보이려고 하는 일 자체가... 내겐 너무 무리였다.
그렇게 힘들게 한 곳 한 곳 지원을 했다. 괜찮은 곳은 서류가 붙어도 코딩 시험과 인적성이 나의 앞 길을 막아섰고, 어쩌다 붙은 곳은 턱도 없는 연봉을 제시했다..
그렇게 나는 우울증에 걸리게 되고,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기 시작했다. 왜 취준생들이 자살을 선택하는지도 이해가 될 정도로 정신적인 고통의 시기를 느꼈다.
눈높이가 낮아지고 또 낮아져서 결국 터무니없는 연봉의 중소기업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돈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실무를 익히고 새로운 기술을 접하며 내 실력을 상승시켜 내 스스로 몸 값을 올리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내 인턴활동의 스타트 업 정도만 되었더라도...
그러나 내가 들어간 기업은 SI업체.
개발은 개발인데, 항상 똑같이 반복되는 업무에 실력 상승과는 전혀 무관했고, 이러한 일거리가 굉장히 많아 내 인생에 영양분 없는 야근이 지속됐다.
그리고 첫 직장이다 보니, 원래 모든 개발자들이 나 처럼 일하는 건 줄 알았다.
취업을 서두르지 않아도 되었고, 굳이 조바심 내지 않았어도 되었던 것이었다.
졸업 후에도 차근차근 취업준비를 해도 괜찮았는데...괜히 몇 군데 떨어지면서, 마치 발등에 불이 난 마냥 쓸데없는 초조함에 스스로 여유를 가지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내 인생에 가장 큰 후회스러운 선택을 하게 되었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다]
내 풋풋한 개발 인생을 SI업체에 6개월 정도 버렸을 때쯤, 내가 그토록 원하고 꿈꾸고 갈구하던 개발의 길과 맞지 않다고 판단하고 퇴직을 결심했었다. 그렇게 팀장님과의 면담을 신청했다.
"어디를 가든 인용씨가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도 있어. 어디를 가도 똑같을 걸?"
6개월이란 기간 동안 나의 개발 열정이 많이 사그라들었나 보다...
팀장님의 그 한마디에 엄청난 고민을 하게 되었고, 팀장님의 말이 맞겠다고 수긍하게 되었다.
"내가 보지 못한 다른 세계가 있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서 우물 밖을 벗어나 보려 했던 내가, 이러한 팀장님의 말로 또다시 2년 정도 우물 안의 생활을 하게 되었다.
결국 그 팀장님도 SI라는 우물 안의 개구리였을 뿐이었다...
(팀장이나 된 사람이 Github를 모를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사촌 형의 방문, 우물 밖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다]
친척 중 사촌 형 한 분이 스타트업 CTO이다. 그러나 서로 개발 쪽으로 얘기를 잘 한 적이 없었다. 서로 바쁜 것도 있고, 우선 연락 자체를 잘하지 않았던 것 같다. 뭐.. 명절에만 큰 댁에서 잠깐 얼굴 보는 정도..
언제는 사촌 형이, 아는 사람 결혼식으로 서울에 올라온 적이 있었다. 서울 올라온 김에 여기저기 돌아다닌 후, 마침 내가 서울에 생활하니 얼굴도 볼 겸 우리 집에서 하룻밤 신세 질 수 있는지 연락을 받았다.
흔쾌히 승낙하여 형은 우리 집으로 찾아왔고, 자기 전까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여자 친구와 잘 지내는지의 연애 얘기부터 시작해서, 일은 어떤지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 나의 보잘것없는 개발 인생을 들려주었다.
"웹 분야로 나가야 해!"
사촌 형이 나의 얘기를 듣고 대답한 한마디였다.
웹 분야의 리액트, 뷰 같은 웹 프레임워크와, Node, AWS, 그리고 개발자 커뮤니티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머리가 띵! 했다. Node 같은 건 이름만 들어봤었고, 웹 프레임워크나 AWS는 전혀 알지도 못했었다.
밤늦게까지 사촌 형의 웹 서비스의 전망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식었던 개발 열정에 다시금 불 질러주게 되었다.
그날 밤, 사촌 형이 우리 집에 머물게 된 건 내 개발 인생을 크게 바꾸어 준 행운이었다.
[새로운 개발 삶을 위해 다시 용기를 내다]
다음 날, 나는 웹 개발 쪽으로 이것저것 알아보기 시작했다. ES6 문법, Promise, 비동기의 개념 등등..
평소에도 자바스크립트를 그렇게 많이 써봤지만, 내가 아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같은 자바스크립트 언어인데도 내가 모르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더 뒤처지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이 쪽 세계로 뛰어들어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리액트.... 그래, 우선 리액트를 먼저 공부하자!
그러나 나 혼자서 과연 이 것을 공부할 수 있을까? 이것 하나를 공부한다고 뭔가가 바뀔까.. 걱정이 많이 들었지만, 우선 시작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IT교육기관을 찾아보고, '패스트캠퍼스'의 React 교육을 찾게 되었다.
100만 원 가까운 교육 비용이 부담스러워, 사촌 형한테 해당 교육을 듣는 게 어떤지 물어봤다.
"코드 스테이츠에 들어가!"
나의 멘토 사촌 형의 말을 듣고, 코드스테이츠를 알아봤다.
커리큘럼이 많이 다르다... 자바스크립트 기본개념부터 실무에서 사용되는 웹 기술 스택을 전부 다룰 수 있다. 당장 신청하려고 결재 페이지로 들어갔다.
그러나 가격을 보고 식겁했다...
600만 원이 훨씬 뛰어넘는 비용에 엄청나게 망설여졌다... 내가 과연 이 정도의 돈을 내면서까지 들어야 되는 건가...?
쥐꼬리만 한 월급쟁이인 내가 600만 원 이상의 비용을 갑작스레 쓴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냥 혼자 공부해도 되지 않을까? 그냥 싼 교육 들어도 상관없지 않을까? 일주일간은 정말 고민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싼 것에는 다 이유가 있고, 비싼 것에도 다 이유가 있다' 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타입이다.
"비싼 만큼 값어치를 분명히 한다"라는 나의 멘토인 사촌 형의 결정타로 마음 굳게 먹으며 결재를 하였다.
그렇게 코드스테이츠에 내 개발 인생을 걸고 도박을 시도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퇴사를 하였다.
[새로운 시작]
백수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제는 당분간 수입이 없으므로, 지금까지 모아둔 돈 250만 원으로 버텨야 한다.
이머시브 수료인 6월 말까지는 약 4개월 정도... 월세, 식비, 교통비 등등... 금전적으로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다.
코드스테이츠의 Immersive Corse는 4월 1일부터 시작이었다.
백수생활을 시작한 3월에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아침에 일찍 일어나 운동을 했다. 그리고 독서와 영어회화 공부를 매일 1시간 정도 하고, 항상 카페에서 PreCorse 과제를 풀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블로그도 꾸준히 작성하기 시작했다. 성당에서 창세기 연수도 다녀왔다.
한 달간 백수생활을 하는데도 엄청나게 바쁘게 보낸 것 같다.
그리고 드디어 4월 1일부터 3개월 간 코딩에 미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아침 8시에 성수역 패스트파이브에 도착하며, 항상 나가는 시간이 밤 11시였다. 그렇게 3개월이란 시간을 쏟는데, 어떻게 지금의 나를 만들지 못하랴...
ES5를 쓰면서도 그게 ES5인지도 모르던 내가, 4개월 가량의 시간을 코딩만 바라보고 성장해왔다.
그리고 이제는 Serverless라는 개념까지 활용하여 서비스를 배포해 볼 만큼 상당히 많은 실력을 상승시켰다.
이렇게 코드스테이츠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새로운 세계를 경험해보기 위해 준비를 하면서, 나의 개발 인생의 1부를 여기서 마무리하려고 한다.
대학생활을 올라오면서 지금까지 개발 인생을 8년을 살았다. 이것저것 많은 경험도 해보고 좋았던 점, 힘들었던 점 참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힘들었던 점들 모두 내가 성장하는 발판이 되주었던 것 같기도 하다.
미래의 내가 또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정말 궁금하다.
끝난 게 아니다. 중간도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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